[넷플릭스 영화 리뷰] 스펜서 : 왕세자비와 인간 사이의 고뇌를 그리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스펜서는 단 3일간의 시간을 통해 다이애나 비의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이 영화는 왕실 전기 영화의 틀을 깨고, 심리적 인물극으로서 왕세자비의 진짜 얼굴을 조명합니다.


영국 왕실은 오랫동안 타블로이드와 역사학자, 영화인들의 관심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하지만 *스펜서(2021)*처럼 불편할 정도로 친밀하고 강렬한 시선으로 왕실을 바라본 영화는 드뭅니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전기를 연대기적으로 풀기보다, 단 세 날 — 크리스마스이브, 크리스마스, 박싱데이 — 동안 샌드링엄 저택에서 벌어지는 사건만을 다룹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안에 영화는 벼랑 끝에 몰린 한 여성의 내면을 치밀하게 그려냅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다이애나 비를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고통과 불안, 내면의 저항을 오롯이 체현합니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과 초현실적 연출을 넘나들며, 정체성과 슬픔, 반항, 공적 기대에 짓눌린 개인의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1. 전기영화가 아닌 심리 스릴러

라라인 감독은 영화 시작부터 명확히 합니다. 스펜서는 “진실한 비극에 기초한 우화”입니다. 다이애나의 생애를 순차적으로 따라가는 대신, 단 한 번의 왕실 행사에서 그녀의 심리 상태를 집중 조명합니다. 이 영화에서 왕실 저택은 고풍스러운 궁전이 아닌, 서늘한 시선과 암묵적 규율이 지배하는 유령의 집처럼 그려집니다.

다이애나가 도착하는 순간부터 불안이 감돕니다. 계단은 삐걱이고, 시선은 냉담하며, 공기는 무겁습니다. 소리 없는 압박감은 오히려 공포 영화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괴물은 없지만, 가장 무서운 ‘규범’이 그녀를 조여옵니다.


2.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다이애나: 연약하지만 단호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에 대해 많은 평가가 나왔고, 그만큼 이 연기는 특별합니다. 그녀는 대중이 기억하는 ‘다이애나’의 표면을 흉내내기보다, 그 안에 숨겨진 불안정함과 반항, 자의식을 깊이 있게 표현합니다.

그녀의 다이애나는 말이 아닌 몸으로 감정을 말합니다. 손을 떨고, 눈을 피하며, 턱이 경직됩니다. 이는 공주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복장을 거부하거나, 야밤에 탈출하고, 식사를 거부하는 장면들은 그녀가 여전히 자율성을 지키려 애쓰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 연기는 다이애나의 역설 — 모두의 사랑을 받았지만 누구보다 외로웠던 인물 — 을 섬세히 구현합니다.

영화 스펜서에서 다이애나 왕세자비로 분한 크리스틴 스튜어트 : 왕실 규율의 비인간성과 단절 속에서 말살되어가는 영혼을 지키고 싶었던 고군분투를 섬세하게 연기한다.
영화 스펜서에서 다이애나 왕세자비로 분한 크리스틴 스튜어트 : 왕실 규율의 비인간성과 단절 속에서 말살되어가는 영혼을 지키고 싶었던 고군분투를 섬세하게 연기한다.

3. 고립, 정체성, 통제의 삼중주

스펜서의 핵심 주제는 ‘고립’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다이애나는 철저히 혼자입니다. 그녀가 마음을 터놓는 대상은 실제 인물이 아닌, 환상 속 대화나 과거의 자아, 혹은 앤 불린의 유령입니다.

정체성에 대한 갈등도 강하게 부각됩니다. “그들은 내가 나 자신이 되기를 원하지 않아”라는 대사는 이 영화 전체의 요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왕실은 질서와 전통을 제공하지만, 개성과 자율성은 억압합니다. 다이애나는 그 대가를 감당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통제’는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장치입니다. 그녀의 하루 일과, 식사, 복장은 사전에 정해져 있습니다. 사소한 부분까지 감시되고 강요되는 일상은, 외면상 화려하지만 실상은 감옥과 다르지 않습니다.


4. 초현실과 상징, 감정의 언어로 만든 영화

스펜서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대신 상징과 감각을 통해 감정의 진실에 접근합니다. 가장 대담한 장치는 앤 불린의 유령입니다 — 왕실에 의해 파괴된 또 다른 여성으로서, 다이애나와 겹쳐지는 존재입니다. 그녀는 경고이자 거울이 됩니다.

손으로 들고 찍은 카메라, 어둡고 흐릿한 조명, 조니 그린우드의 불협화음 같은 재즈풍 음악은 다이애나의 내면을 그대로 시각화합니다. 좁은 복도, 김 서린 창, 새장 속의 새 등의 이미지들은 모두 ‘갇힘’이라는 테마를 반영합니다.


5. 해체되는 동화

수십 년간 다이애나는 ‘왕실 동화’의 상징이었습니다. 스펜서는 그 이야기를 해체합니다. 왕실을 악마화하지 않으면서도, 이 시스템이 어떻게 개개인을 질식시키는지를 묵직하게 비판합니다.

영화의 결말은 승리라기보단 ‘이탈’입니다. 다이애나는 의전을 무시하고 아들들과 함께 햄버거를 먹으러 갑니다. 그저 소소한 외출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혁명적인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그것은 왕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입니다.

스펜서는 역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다시 쓰는 영화입니다.


결론: 왕세자비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복원

스펜서는 왕실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인간으로 존재하려 애쓴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다이애나는 이제 신화도, 희생양도 아닌 —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려 했던 여성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기존 전기 영화의 틀을 벗어난 구조, 연기, 정직한 감정 표현으로 스펜서는 왕실 영화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작입니다.


여러분은 스펜서를 통해 다이애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되셨나요?

이 영화는 왕실, 혹은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이미지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제시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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